Midnight
이 밤을 넘어서

 아야세 레오는 무언가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두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야세 레오에게 있어 그리 좋지 않은 쪽으로 많이 작용하고는 했다. 보통은 기억력이 좋다고 하면 부럽다고 하겠지만, 거꾸로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조차 기억하고 만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아야세 레오가 무언가를 잊을 일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다스의 손, 몸상태는 어떻습니까?”

 

 “계속 이야기 했지만 이제 건강은 회복됐거든?”

 

 “다른 것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레오는 전화를 뚝 끊었다. 분명 자신은 UGN을 그만두고 일리걸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협력요청이 아닌 이런 안부전화가 걸려온다. 리바이어선의 성정을 고려한다면 가능한 일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본다면 어딘가 위화감이 든다. 리바이어선은 마치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계속 물어보고 있으니까. 그 말은 레오가 더 이야기할 것이 있음에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다른 신드롬이면 모를까, 노이만이? 이상한 소리네. 레오는 머그컵에 있던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러고보니 N시로 이사왔었나? 원래라면 북N시에 있어야하는데. 무엇을 계기로 이사왔더라? 짧은 의문이 스쳐지나간다. UGN이야 제 성질을 이겨내지 못하고 박차고 나왔지만 굳이 이사를 한 이유는.

 

 “... …”

 

 레오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집 안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혼자 있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어째서인지 텅 빈 공허에 집어삼켜질 것 같은 감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리바이어선의 말, 텅 빈 듯한 집, 어째서 왔는지 모를 이 도시까지. 전부 이상하게만 느껴져서. 이제 겨우 연구소에서 돌아와 일상을 살고 있음에도 비일상을 겪는 듯한 그 기묘한 감각.

 그것은 서글픔인가? 아니면 억울함인가? 답답한 속은 걷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종류가 아니겠지만 바람이라도 쐬어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리라. 정처없이 옮겨지는 걸음은 목적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레오는 스스로의 기억에 어딘가 빠진 구멍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그것을 스스로 외면했다. 예를들어 저쪽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이라던가. 패티를 세 장 추가했나? 누가? 모른다. 그게 누군데.

 

 아야세 레오는 그것을 혼자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무너져가는 마음을 예민함으로 채워 막았지만 생각대로 되는 일들은 없었으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뭐가 그랬다는 거지? 감정은 남아있는데 기억은 없다. 감정이란 본래 기억에 대치되어 나타나는 것인데 어디서 얻었는 지 모를 감정들만 부서진 사금조각들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그래, 아야세 레오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이 이상한 사금조각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겁 먹지마, 나는 늘 당신 편이니까.

 

 다정한 것인지 무뚝뚝한 것인지 모를 음성이 다시금 레오의 귓가에 울린다. 검은색 머리카락, 붉은색 눈동자. 연구원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연구원과는 지독히도 거리가 멀었던 사람, 그리고 아야세 레오가 일상으로 오도록 내보내준 사람.

 

 “이해가 안 돼…”

 

 그 때도 지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아야세 우이라고 밝힌 그 연구원은 그 이름 하나만 기억하라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레오를 연구소 밖으로 내보냈다. 이유를 뭐라고 했더라?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했지? 아야세 우이라고 밝힌 그 사람은 사랑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 때문에 죽을 자리임을 알면서도 기어들어왔다고. 레오는 바보가 아니었다. 정황상 조합을 했을 때 그 알지 못하는 사람은 레오를 사랑해서 미친 짓을 했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그 사람의 말을 전부 믿을 수도 없고, 연구소에서 나온 이후에 뒤따라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정도로 자신감이 있다면 연구원들을 다 패버렸을 수도 있고. 애초에 알지도 못했던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니면 이해하기 무서웠던 것일 지도 모르지만 레오는 그 사실을 외면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똑똑한 머리가 어떤 결과를 도출할 지 알 수가 없어서. 잊을 수가 없는 두뇌는 그 때의 일을 되감아본다.

 

 어쪄면 기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어렴풋한 이성이 그렇게 대답했다. 잘그락 거리는 백금색 목걸이를 왜 여지껏 착용하고 있나. 이제는 볼 일도 없는 사람의 것인데 그 사람이 준 것을 왜 꾸역꾸역 차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아야세 우이의 온기가 없는 목걸이는 레오의 체온으로 따뜻해져 있었다. 이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금속을, 레오가 내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장담컨데,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가는 남자일거야.

 

 그렇게 말하는 우이의 표정은 어땠던가? 타박을 담고 있는 엉뚱한 말임에도 우이는 즐겁다는 듯 말했다. 마치 이 상황 자체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홀가분하다는 듯이.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던 주제에, 왜 갑자기 그렇게 친근하게 굴었었는지. 그 말에 담긴 감정은 어땠나? 옛날의 레오였다면 그것을 파악할 생각도, 파악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저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레오는 알 수 있었다. 그 말에 담긴 목소리의 온도는 차갑지 않았다는 것을.

 

 “... …”

 

 리바이어선이 계속 해서 묻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시간들이 지났다. 아야세 우이라는 존재는 분명 레오와 연관이 있고… 아니, 연관만 있을까. 굳이 성을 아야세로 통칭한 이유가 있을텐데. 비어있는 집안, 왜 가지고 있는 지 모를 정보들의 향연. 무엇보다 기억을 지웠다고 그 스스로가 말하지 않았나? 무슨 짓을 했는 지는 몰라도 노이만의 두뇌 어딘가에 구멍을 뻥 뚫어놨다. 최근의 일상이 전부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래도록 알고 있었단 얼굴로 당당하게 아야세 레오를 잘 안다고 말했던 그 목소리. 그것을 떠올린 순간 턱 막힌 숨은 무언가를 갈구 했다. 분명 폭주 상태도 아니고, 건강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분명 그는 일상으로 돌아왔음에도 뚫린 기억들이 채워지지 않는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비일상에 머무르고 있다.

 

 애써 지나치려 했지만 아야세 레오는 직감했다.

 아직 밤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