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나리는 날
그 날은 이상한 날이었더랜다.

그 날은 이상한 날이었더랜다.


말간 찻물 위로 국화 꽃잎이 가지런히 피어오르고 턴테이블의 음악은 끊기는 일 없이 부드러웠으며, 고집이 강한 새는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눈치라도 챈 듯 얌전했다. 마치 온 집 안이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하는 것만 같아 유독 이상했다. 동시에 찰나의 두근거림이 스친다. 설렘의 향이 가득 퍼져나간다. 숨기려고 노력해도 숨길 수가 없는 이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제이든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면 알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별이 나리는 것은 오롯이 별의 결정이었으므로.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선이 돌아갔다. 분홍빛이 감도는 붉은 머리칼이 집안의 색채를 채우듯 흐르다가 끝내 청록빛 별로 인도했다. 그 빛을 마주하다보면 자연스레 그 날 있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얀 새는 어리광을 부리며 인사를 건네고,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며 차를 마신다. 그리고 그 날은 이상한 날이었더랜다. 분명 평소와 같음에도 이야기가 끊어졌다. 아니, 이걸 끊어졌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점점 소리를 줄이듯이 조용해진 것이니까.


"세라피나."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자, 세라피나가 생각에서 깨어난 듯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제이든은 지금 이 순간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같이 지낸 시간을 고려했을 때, 이럴 때의 세라피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어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 제이든은 그것을 강요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자연스레 피곤해보인다며 세라피나를 안아들고 침대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에 일어난 작은 투닥거림은 불안을 없애듯 자리를 잡고 끼어들었다.


제이든은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기본적인 정을 알게 되기까지 1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뒤늦게 채워넣으려고 했지만 한참 부족했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욱여넣기에는 얄팍하기 그지 없는 제이든이라는 사람의 근본이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자기자신에게도 그러니 타인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히 굴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제 목마름에 들이부었다가 찢겨나갈까봐.  그러니 세라피나를 대하는 제이든의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가족마저도 함부로 대하는 버트란드의 핏줄이 그에게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 진짜 괜찮다고 했잖아."


"싫다고 했으면 안했지."


투닥거림의 연장선이었다. 세라피나가 피곤해보이면 늘 제이든이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왔기에 이번엔 정말 괜찮았다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세라피나와 저는 싫다고 하면 당연히 안한다고 말하는 제이든의 일상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러 서로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싫다고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괜찮은 걸 알면서 안아들고 온 이유에 대해서도. 아직 별이 나리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 시기는 조금 알고 싶은 욕심이 불쑥 들어버려서.


"전에도 말했잖아, 세라피나."


"난 잘 모르니까 알려줘야 한다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평소에도 하던 말이었는데 이 순간 만큼은 긴장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라피나의 등 뒤로 은은하게 밤을 감싸는 달빛 때문인지, 열어둔 창문의 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붉은 빛 때문인지, 그마저도 아니라면 금방이라도 나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너의 표정 때문인지. 심장의 울림이 네게도 전해질까, 이 울림을 알게 된다면 너는 겁을 먹을까. 그 생각이 먼저 들고야 말았다. 이 감정이 혹여라도 너를 아프게 만들까 하는 걱정이 먼저였다. 새삼스럽게도 숨길 수 없는 이것의 정체가 애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은 이상한 날이었더랜다.


깨달으면 안 될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아버리고, 심장의 울렁임이 멈추지 않고, 별이 결정을 해줄 것 같은 날이었다. 작게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온기를 띄는 손이 제이든의 뺨을 감싸고 평소보다 더한 열을 머금었다. 그리고 그 뜻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언제나 제이든은 세라피나가 하는 말을 알고 싶어했기 때문에. 별이 나리겠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리가 없었다.


팔을 조금 더 뻗어 그대로 품에 안는다.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 별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한껏 품에 안고서 그 따스함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별이 내려오고야 말았다. 제이든은 세라피나를 품에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선을 넘어 욕심을 내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세라피나가 허락해주는 만큼 잔뜩 욕심을 부릴 것이다. 심장의 울림이 귓가에 선명하게 들린다. 자각하지 못하던 감각들이 선명해지고, 손에 쥔 애정이 따스했다.


"사랑해, 세라피나."


그 날은 이상한 날이었더랜다.


그 날은 별이 나리는 날이었더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