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퍼 코드 S-1001은 망연하게 눈 앞의 광경을 바라본다. 불길, 폐허, 그리고 생명의 말살. 불길이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흰색, 주황색…… 번잡하게 튄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멍하니 유리알 같은 시선이 굴러가다가 문득 깨닫는다. 점멸하던 시야와 귓가에 선명하게 울리던 경고음 소리가 알린다. S-1001 폭주 임박. 근방 1km 내의 시민을 대피시키십시오! 에스퍼의 기민한 감각은 그런 소리까지 명확하게 잡아낸다. 뜨거워, 뜨거워, 뜨겁다고……. 본능적으로 숨어버린다. 웅크려 앉은 신체가 왜소한데, 누구 하나 달려와 안아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 문득 서러워 눈에서 불꽃이 뚝뚝 떨어진다.
누구라도 와 줄까? 아니, 폭주한 S급 에스퍼의 근처에 죽고 싶은 게 아닌 이상 누가 다가온다고. 그러고 보니 아까까지는 인이어로 다급하게 전달하는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별이 뜨지 않은 밤마냥 빛을 잃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고, 아. 그제야 오른쪽 귀가 허전함을 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자리를 넓혀가는 불꽃이 타닥거리는 소리가 제대로 들린다는 걸 확인해 귓가에 손을 대었을 때는 이미 인이어마저 열에 녹아내린지 오래일 때다.
눈 앞으로 파직, 전기마냥 불꽃이 튄다. 세라피나는 문득 고열로 희미해진 정신 속에서도 짙은 물빛 시선을 떠올린다. 생각만으로도 비식비식 웃음이 잇새로 새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희미한 이성으로나마 다소 비참한 합리화를 하면서. 뭐라도 말할걸. 조금 더 상냥하게 이야기할 걸 그랬나? 오기 전에 차 한 잔, 더 마시고 싶었는데.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오로지 하나의 주제로 귀결되고 주마등처럼 지난 시일이 스친다. 왈칵 눈물이 터지고 지나친 고열에 채 바닥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흩어진다. 싫어, 다시 보고 싶어, 왜 이러고 있어야 해? 돌아갈래, 도와줘…….
“제이든….” 잇새로 유약한 단어가 새어나오고 비명과 다르지 않은 흐느낌이 공허를 메운다. 불길에 잡아먹히는 주위를 신경쓸 수 없어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번져감에도 수습할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웅크려 앉은 채 울고 있었던 것도 한참, 이미 인간의 생존 가능한 체온을 넘긴 지도 한참. 정말로 제가 만들어낸 불길에 살라먹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원초적인 두려움이 불쑥 고개를 들 때.
“세라피나.” 있어서는 안 될 부름이 들려온다. “세라피나,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여기야, 고개 들어봐. ……찾았습니다.”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목께에 내려앉은 손길이 차가워 파드득 어깨를 떨며 고개를 들면, 방금 전까지 온통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바다색 시선이 휘어진다. 격양된 감정에 일순 확 타오른 불길이 물을 뿌린 것마냥 잦아들고, 투명한 눈동자 속 자신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는 걸 멀거니 보고 있을 즈음, 시선이 가까워져 색 다른 바다가 섞이는 것을 본다. 어?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도 망각하고 얼이 빠진 낯 위로.
바람이 불어 불길을 쓸고, 그림자가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