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나 우이의 첫 번째에는 언제나 아야세 레오가 존재했다.
첫 번째 스승도, 첫 번째 임무도, 첫 번째 폭주도, 그 안에는 아야세 레오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키즈나 우이는 그런 아야세 레오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불만이 있다면 여기서 그만두면 될 텐데, 짐승의 거죽을 뒤집어쓴 괴물은 그냥 멀리하고 시선만 돌려도 되지 않을까. 아야세 레오에게는 그럴 만한 재력도 있었고, 그럴 만한 힘도 있었다. 키즈나 우이 또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아야세 레오를 늘 신기하게 여겼다.
폭주를 얼핏 기억한다는 건 아야세 레오가 모르는 사실이다.
가끔 들려오는 긴 침묵, 저를 아는 듯한 행동, 제 말을 들을 때마다 엉망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은 기억의 파편을 떠올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럼에도 키즈나 우이는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때의 기억한다면 상처를 받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키즈나 우이는 결심했다. 이별을 준비하는 스승을 위해서라도 모르는 것으로 하자.
그래, 몰라야한다. 짐승 같은 감각을 가진 키즈나 우이의 앞에서 애써 모든 사실을 숨기고 덮어두려는 아야세 레오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제자의 일상을 지켜주고 일상을 살아가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스승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인간성을 잃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누군지 예상 가시지 않습니까.”
“… ….”
“…설마 예상 못 하셨으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조사를 해야 싸우든 말든 할 거 아니니!”
바보 같은 키즈나 우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아야세 레오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야세 레오가 조사를 하자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을 주기 시작한 친구에 대한 믿음이 허무하게 깨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제자가 쉽게 배신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마모되어 가는 인간성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키즈나 우이는 제법 객관적인 편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저의 이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애초부터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랬다면 좋았을까, 이제와서는 모르겠다. 키즈나 우이는 습관적으로 생각을 거뒀다. 깊게 생각하는 것은 제게 맞지 않으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제정신인 사람은 없습니다.”
애초에 스스로도 이해 못 할 짓을 저지르는 것이 사람이니까. 그저 그런 단편적인 말만을 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그래, 그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야세 레오에게는 아니었나보다. 짧은 침묵, 이어지는 수긍. 아야세 레오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키즈나 우이의 반응이 퍽 인간적이지 못 했던 것일까. 그럼에도 아야세 레오는 “인간적인” 이유를 들어 키즈나 우이가 할 일에 대해 변호하고 있었다.
“계획도 알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그거 터지면 학교도 터집니다.”
일부러 엉뚱한 말을 뱉었다. 아야세 레오가 어떤 의미에서 하는 말인지 예상을 하고 있음에도, 그냥 바보로 있기로 했다. 아야세 레오의 말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키즈나 우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이었던 친구를 공격해야하는 제자가 여전히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길 바라고 있다.
모순적이다. 키즈나 우이가 살인 하길 원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존 확률을 알리고 막길 바라는 모습이. 혹시나 인간적인 정으로 인해 친구의 편을 들어버릴까봐 걱정하면서도 키즈나 우이가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이.
사실 키즈나 우이가 멀쩡해보였던 이유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끝난 선택을 되돌아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키즈나 우이는 똑똑하지 않다. 과거는 일부 파편을 제외하고는 죄다 잊어버렸고, 알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바보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문득 느꼈다. 스승이 아야세 레오가 아니었다면, 저는 그리 올바르게 살지는 못했을 거라고. 그래서 깨달았다. 아야세 레오가 키즈나 우이의 곁에 오래 있으면 안 되겠다고. 키즈나 우이로 발생한 모순으로 인해 망가질 것 같은 사람이라서.
“당신도 저를 놓아야 할 텐데.”
“…하?”
아야세 레오, 그는 키즈나 우이가 이따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습관적으로 생각을 거둘까 하다가도 키즈나 우이의 인간성은 아야세 레오의 희생 위에서 만들어지고 구축되어 가고 있었기에, 키즈나 우이는 “인간적으로” 생각할 수록 아야세 레오에 대한 생각을 떼어낼 수 없었다. 일부러 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죽음에 익숙하다는 말에 움찔하는 몸이, 말로는 늘 이별을 고하고 홀로서기를 바라면서도 끝까지 관여하려는 모습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
피가 흩어지고, 뼈가 부러지고, 가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 키즈나 우이는 저 자신에 대한 슬픔이 아닌, 아야세 레오에 대한 슬픔을 느꼈다. 이런 상황임에도 일상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정작 스스로는 무너져 엉망이 되어감에도 키즈나 우이는 멀쩡하길 바라고 있기 때문에. 바보 같다. 분명 바보 역할은 제가 해야 했는데. 노이만인 사람이 왜 바보가 되어가는 건지. 누군가의 희생 아래에서 만들어진 인간성은 과연 옳은 것인가.
… … 아, 모르겠다.
어차피 죽어버리면 바스라지고 사라질 인간성인데.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모든 것은 돌아간다. 그러니까 아야세 레오에게 그리 애쓰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냥 놓아도 된다고, 할 만큼 했으니 외면해도 된다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고 언젠가는 그렇게 돌아가고 말 것이라고. 그런데 이 말이 상처가 될 까봐, 또 그 자신을 할퀴어버릴까봐, 키즈나 우이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것 봐, 나는 당신 때문에 인간이 되었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
기분이 어때, 아야세 레오.
기어이 친구의 목을 틀어쥐었을 때는 이대로 끝내버리자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미 아야세 레오의 죽음을 몇 번이나 보았고, 저도 피거품을 뱉어내며 일어나있던 상태니까. 넌 너무 인간적이라며, 똑같은 괴물 주제에 인간적이라며 죽여주길 바라는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짐승의 거죽을 뒤집어쓴 괴물. 그것이 키즈나 우이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결정을 했다면, 되돌아보지 말자.
죽음은 공평하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괴물이든 공평하게 찾아오는 법이다.
그래서,
그러니까,
… ….
죽음은 쉽고 삶은 어렵다. 삶 속에서 일상을 찾고, 일상을 위해 스스로를 유지한다.
그랬기에 키즈나 우이는 제 옆에서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먼저 느꼈다. 키즈나 우이가 누군가를 죽여 일상이 극단적인 형태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의 시선. 언젠가, 어느 날에는 정말 사람을 죽이는 날이 올 텐데, 그것이 지금이 아니었으면 하는 그 시선. 적어도 아직은 보호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 눈빛이 키즈나 우이의 생각을 뒤집어놓는다.
결정을 철회했다.
저를 붙잡고 스스로를 깎아먹는 사람이 눈 앞에 있는데, 굳이 그 사람을 상처주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인간성인가? 모르겠다. 인간성이란 것이 사람마다 다르니 원. 키즈나 우이는 그 이상 깊게 파고 들지 않았다. 인간성은 아직 자신에게 어려운 부분이고, 어찌되었든 자신은 아야세 레오를 먼저 위하기로 결정했으니.
농 섞인 말을 뱉었다. 어떤 것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분이 더 집착하실까 무서우니 그만해야겠다고. 목을 틀어쥐고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굴었던 짐승의 팔을 거두었다. 그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린 친구의 표정을 보며 느꼈다. 제 친구는 자신이 완전한 괴물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옳다고 말하는 괴물이 되기를.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자신의 죽음으로 키즈나 우이를 괴물로 만들고 싶어했을 것이다. 아야세 레오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래, 키즈나 우이가 괴물이 되지 않기로 선택한 이유는 아야세 레오다. 언제나 키즈나 우이의 첫 번째를 가져간 사람, 그리고 키즈나 우이가 인간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첫 번째 이유. 첫 일상, 처음으로 만들어낸 인간성. 그 정의가 아야세 레오였기에.
그러니 놓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했다.
영원히 목줄 잡은 짐승에게 묶일 것이 아니라면,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키즈나 우이는 그 선택을 어떻게든 받아들일 것이다. 놓는다면 그 나름대로 언젠가의 시간에서 오고 가며 인사를 하고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가끔 보면 일이 귀찮다는 말이나 하고,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있기를.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다음에 또 만남을 기약할 수 있는 만남을 만들 것이다.
일상으로의 첫 걸음은 모두 당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